한 상인의 리월에 대한 기억
리월 상회와 모험가 길드로부터 리월항의 여행기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한편으론 난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캐러밴을 따라 티바트 대륙 곳곳을 누비며 장사를 했고 그중 리월항만해도 80번 정도 방문했기에 확실히 나보다 리월항으로 통하는 길을 잘 아는 외지인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론 장사를 하며 시인 작가들과 많은 인연을 쌓긴 했지만 그래도 글쟁이가 아니어서 독자들이 재미있어 할 만한 글을 적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 이점 양해하고 이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
내가 어린 시절, 캐러밴 사이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자유 무역항인 리월은 이미 번영과 발전의 대명사였다. 캐러밴의 목적지가 리월이라는 걸 들을 때마다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자신도 운송 행렬 혹은 상선에 끼워달라고 졸랐다. 비록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캐러밴을 따라 리월에 갔던 기억은 전혀 잊히지 않는다. 그 번화한 거리, 북적이는 사람들, 신비한 물건과 아름다운 수공예품이 가득한 노점은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다. 노점에서 판매하는 먹거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끈따끈한 열기마저도 오묘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성인이 된 후 부친은 나에게 가업을 맡겼고 그때부터 본인이 직접 캐러밴을 이끌고 티바트 대륙의 도시들을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 리월은 더 이상 어린 시절 마음껏 뛰어다니며 놀던 항구가 아니게 되었다.
난 최근 몇 년 간 리월항의 발전사에 대해 이런 결론을 내린다. 티바트 대륙의 다른 발달된 도시들처럼 리월의 빠른 발전은 뛰어난 지리적인 요소를 빼먹을 수 없다.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 항구도시와 연결된 육로는 다양한 지형이 섞여있다——오르락 내리락하는 산기슭, 광활하게 펼쳐진 평야와 여울. 대지에는 진귀한 광석이 풍부하고 광산에서 캐내진 광석들은 야장들의 손을 거쳐 뛰어난 공예품으로 재탄생한다. 게다가 항구에 해상 무역로가 개척돼 무역 붐을 일으켰다. 공예품 수출은 리월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리월에서 만들어진 정교한 공예품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티바트 대륙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리월의 해상 무역로는 오랜 세월에 걸쳐 발전되어 현재는 아주 큰 규모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리월에 무역을 하러 간다면 우리는 상선을 타고 가는 걸 추천한다. 하지만 만약 리월을 처음 방문하는 여행객에게는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에서 시간을 때우는 것보다 육로로 방문하는 게 더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으니 육로를 추천한다.
주변의 복잡한 지형을 고려할 때 리월로 향하는 가장 일반적인 육로는 몬드성 밖의 다운 와이너리에서 남서쪽으로 출발하는 것이다. 큰 길을 따라가다 보면 몬드 특색이 가득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몬드 현지 과일을 들고 조금만 걷다 보면 호수와 우뚝 솟아있는 산기슭이 보일 것이다. 이는 곧 몬드의 국경에 도착한다는 걸 의미한다.
호숫가를 따라 서쪽으로 향하면 나오는 두 개의 높은 절벽의 기이한 각도와 좁은 나무판자로 지어진 길이 천연의 장벽처럼 리월과 몬드를 완전히 다른 세계로 분리시킨다. 어릴 적 이곳을 지날 땐 시간에 쫓겨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고 지나다녔다. 그러다 한 번은 연로한 어부와 동행한 적 있다. 이 길을 지날 때 그 어부는 강 속의 농어의 좋고 그름을 판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부터 시작해 리월의 오래된 전설까지 얘기하게 된다. 산골짜기 사이의 호수는 모두 바위 신이 내린 단비로 여기서 오래 머무르다 보면 신에 한발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고 했다.
난 이런 이야기를 늘 웃어넘겼지만 활발하고 낭만적이며 머릿속에 기묘한 아이디어가 가득한 내 부인은 이를 진실로 믿었다. 그 뒤부터 내 캐러밴은 이곳을 지날 때마다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출발한다. 정말로 신이 우리에게 더 많은 축복을 내리길 바라면서...
이 절벽으로 만들어진 석문을 지나면 시야를 가로막고 있던 게 모두 사라지며 경치가 확 트이게 된다. 이곳은 리월 외곽의 전형적인 지형으로 사방 곳곳에 흩어져있는 못에 하늘이 비치고 못 사이사이에는 푸르른 식물들도 뒤덮여있다. 저 멀리 적화주에 위치한 망서 객잔이 눈에 띈다. 이 유명한 건물은 거대한 돌기둥 위에 건설되어 있다. 캐러밴 사람들에게 있어 망서 객잔은 하나의 랜드마크다. 망서 객잔에 도착한 후 일부 외지 상인들은 여기서 바로 리월 현지 상인들과 거래를 진행한다. 나머지 일부는 여기서 잠시 쉬거나 소소한 거래 혹은 정보를 교환한 뒤에 리월항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움직인다.
리월에 관한 여정과 기억이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일일이 모두 다 적을 순 없다. 어린 시절부터 중년이 되기까지 리월항의 시대별 모습이 머릿속에서 겹쳐진다.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여태껏 걸어온 길 위에 날 기억하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을지도...
추가 말: 상회와 모험가 길드의 요청에 감사한다. 이 여행기를 써 내려가며 즐거웠던 추억들이 많이 생각났다. 그리고 사랑하는 내 부인 클레어에게 감사의 뜻 전한다. 이 귀엽고 문학을 사랑하는 그녀로 인해 내 무식한 글 솜씨로 여행기를 한층 더 재미있게 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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